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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의(衣)생활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7-03-07
조회수
1174
배급제도는 의생활 분야에도 오래 동안 적용되어 왔다. 공급체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던 시절에는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인민반에서 공급카드를 발급받은 뒤 각자 상점에 카드를 제시하고 옷감과 의복을 국정가격으로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의복 또한 식량과 마찬가지로 당국에서 배급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북한 당국은 중앙공급 대상자와 일반공급 대상자로 나누는 등 의복을 급수에 따라 차별 배급해 왔다. 중앙공급 대상자는 고급모직물을 배급 받는다. 특히 예술가와 기자·교원 등 특수집단과 당 및 내각의 간부들에게 좋은 옷감과 의복을 공급한다. 그러나 급수가 낮아질수록 반모직이나 질이 나쁜 옷감을 받는다. 털모자, 면장갑, 셔츠, 블라우스, 스타킹, 운동화 등과 같은 보조 의복들은 공급대상 품목이 아닌 자유 판매품이기 때문에 개인이 구입한다.

1990년대 경제난을 겪으면서 의복공급은 사실상 식량 배급 보다 먼저 중단되었다. 의복의 개인구입에 익숙한 주민들은 의복을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구입하여 입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학생복은 아직도 배급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2년에 한 벌 무상으로 공급했지만 최근에는 국정가격으로 공급한다. 국정가격은 장마당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선호하지만 공급 물량이 부족해 학생복 구입도 장마당에서 이루어진다.

북한 주민의 의생활도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천리마시대와 사회주의 생활양식’이라는 명분으로 획일화되어 남자는 인민복을 입고 여성은 흰저고리에 검정 통치마 한복을 입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블라우스, 점퍼, 스커트 등 양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외국인과 해외 교포의 왕래가 많은 평양, 원산, 청진 등의 대도시 주민들이 양장옷을 많이 입었다. 1980년대 당 기관지와 매체에 패션 기사들이 게재되고 1990년대 들어와서는 그 영역이 머리 모양과 화장법에까지 확대되었다.

북한 주민의 복장이 변화된 계기는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세련되고 활달한 차림새는 북한 주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국인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새를 흉내 내는 주민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옷차림이 눈에 띄게 활달하고 화려해지고 화장도 진하게 하는 등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으며 다양한 헤어스타일도 등장하였다.

1990년대는 당국이 ‘민족전통’을 강조하자 매체에서 여성들의 ‘조선옷’ 차림을 선전하는 등 전통 복장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에 일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평양에서 개최된 패션쇼(‘조선옷 품평회’)는 대담하고 서구화된 옷차림을 보여 주고 있는 바 짧은 치마와 단정한 정장스타일은 대표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헤어스타일과 가방 등 액세서리도 서구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북한 여성의 옷차림은 다소 다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생활고로 말미암아 옷을 여러벌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 주민들은 점퍼나 스웨터·인민복·작업복 차림이며, 주로 짙은 색 계통의 옷을 입는다. 젊은 여성의 경우 머리를 손질하고 가볍게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통일부 통일교육원 '2016 북한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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