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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갈루치 “트럼프·김정은, 외교·안보 잘 모르고 불안정”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주역 인터뷰

1994년엔 없던 핵 10~20기 보유
1차 북핵위기 때보다 훨씬 엄중

상황 갈수록 악화…여기서 멈춰야
조건없이 만나 상대 의중 확인 필요

북-미협상의 목적은 북핵 폐기
관계정상화 되면 핵무장 이유없어
북핵 해결 길고 느린 과정 될 것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특사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뤄짐에 따라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아간다.”

 

1993년 3월 북한의 일방적인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촉발된 제1차 북핵위기를 해결한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제2조3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1일로 기본합의 체결 23주년을 맞지만, 북핵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1차 북핵위기 당시 나왔던 ‘대북 선제타격론’이 재등장한 위태로운 상황이다.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보다 현 정세가 훨씬 엄중하다”며 “북-미 양쪽은 거친 언사를 멈추고, 긴장을 낮춰야 한다.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북한과 미국 양쪽의 거친 언사가 이어지면서, 최근 한반도 정세가 심상찮다.

 

“실제 매우 엄중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북한이 아이시비엠(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최대 사거리로 시험발사하고, 미국이 크루즈미사일 공격을 퍼붓고, 북한이 이에 다시 대응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텐가? 지난 10개월여 동안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1차 북핵위기 때와 비교한다면?

 

“1994년 북한엔 핵무기가 없었다. 지금은 10~2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한다. 탄도미사일 능력도 훨씬 고도화한 상태다. 북한의 지도자도, 미국의 지도자도 외교·안보를 잘 모르고, 대단히 불안정해 보인다. 1994년엔 동북아 안보에 있어 한-미 동맹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미국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한다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이른바 ‘게임체인저’가 될까?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쪽과 만났을 때 그걸 물었다. 북쪽에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시비엠을 완성하는 건 북한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이라고 말해줬다. 북한이 미 본토는 물론 동맹국을 공격할 수단을 확보한 것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북을 군사공격의 목표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선제공격을 해오면 한국과 일본은 물론 괌까지 보복공격을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그렇게 주장은 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할 것이다. 1950년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유엔 총회장에서 신발을 벗어 탁자를 내리친 일이 있다. 그때 수많은 이들이 ‘미치광이 손에 핵무기가 들려 있다’고 우려했다. 흐루쇼프는 일부러 ‘미치광이’처럼 보이려 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것뿐이다.”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강경론자들은 북한이 ‘나쁜 행동’을 한 직후 협상을 제안하는 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한 주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과 만났을 때,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도발을 하면, 적어도 6개월은 협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북쪽에선 ‘새 정부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면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전해달라’고 하더라. 실제 그렇게 됐고,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여기서 일단 멈춰야 한다. 잠재적인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 협상을 지속하기 위해 상대방이 어느 정도까지 ‘자제’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이를테면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거나,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는 등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조건을 서로 확인하는 ‘대화를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과 똑같은 얘기로 들리는데.

 

“중국의 제안은 ‘등가교환’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은 유엔이 불법으로 규정한 일인 반면, 한-미 연합훈련은 합법적이다. 상황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법이다. 이를테면 북-미 대화를 위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 북한도 협상을 위해 일방적으로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합의에 따른 ‘등가교환’이 아니게 된다. 실제 기본합의 협상에 앞서 1993년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과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방식을 활용했다. 협상을 위한 조건을 담은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기자회견은 따로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방식과 조건을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협상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북-미 협상의 목적은 북핵 폐기다. 북한은 핵무장을 방어용이라고 말한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핵무장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일단 북한의 핵능력을 동결시키고, 핵무기를 하나씩 제거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검증이 불가능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선 북한 인권 문제도 거론될 것이다.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길고도 느린, 점진적인 과정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

 

정인환 노지원 기자 inhw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815297.html#csidxeeb03eb62c67fb58e466cf0d38f83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