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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조호연 칼럼]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잊혀질 권리

작성자
유진우
작성일
2018-08-03
조회수
1432

(경향신문, 2018.7.31)

북에서 남으로 넘어오는 것을 ‘귀순’이라고 부른다. 적이 마음을 바꿔 순종한다는 뜻이다. 의문이 생긴다. 그럼 북한 주민 2500만 모두가 적이란 말인가. 북이 남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거’로 치켜세우는 것도 온당치 않다. 안중근 의사가 지하에서 혀를 찰 일이다. 국경을 넘는 행위는 망명이란 단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과도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다보니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 얼마 전 남으로 왔다가 북으로 돌아간 북 출신 여성이 있었다. 남북 양쪽에 묻고 싶다. 그는 귀순자인가, 의거자인가. 

누구든 국경을 넘는 것은 일생을 건 모험일 수밖에 없다. 자유의사여야 귀순과 의거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남북의 치열한 체제 경쟁 속에서 이런 원칙은 휴지 조각 취급을 받았다. 귀순자나 의거자 숫자가 많을수록, 그들의 신분이 높을수록 더 나은 체제라는 인식 탓이다. 실적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격화되었고, 이기기 위해 회유나 납치 등의 범죄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인권이 철저히 무시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하는 마당에 이제 그 같은 흑역사는 끝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야만의 시대의 유산은 남아 있다. 바로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을 ‘집단 귀순’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런데 여종업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중국에서 동남아국가로 옮겨가야 했고, 일부가 이런 한국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지배인이 한국 비디오를 시청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지배인은 지배인대로 국내 정보기관들의 협박과 회유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이 총선 승리를 위해 여종업원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착취한 비인도적 범죄다. 집단 입국을 언론에 공개한 것만으로도 여종업원들과 북한 가족의 안전을 도외시한 국가폭력이 아닐 수 없다. 철저히 조사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정 처벌해야 한다. 

현재 이 사건은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북한은 보수정권의 납치극으로 규정하며 문재인 정부가 이들을 송환하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최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방한해 일부 여종업원을 면담하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검찰이 수사 중이고, 국가인권위회가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이 사건은 인권국가로서 한국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 사건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여종업원들의 자유의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는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일부 여종업원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멋모르고 한국에 왔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개를 전제로 한다면 그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 가족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여종업원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송환 문제다. 무엇보다 송환을 원하는 사람의 인권과 남기 원하는 사람의 인권이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송환된 사람과 북 가족은 환영받을지 몰라도 가지 않은 사람의 북 가족은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다. 한쪽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쪽의 인권을 훼손한다면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송환을 원하는 여종업원들을 모두 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냥 묻어두자는 주장도 찬성할 수 없다. 인권 침해 행위를 묵인하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후속처리를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그간 시민사회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여종업원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면담을 요구하고 허락 없이 거처를 찾아가는 바람에 주거침입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여종업원들의 증언을 그대로 공개한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는지 되새겨볼 대목이다. 물론 어물쩍 넘어가려는 분위기 속에서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부와 유엔이 진상규명에 나서도록 유도한 공로는 인정한다. 마찬가지 맥락으로 정치권 일각에서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자제했으면 한다. 자칫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식당 여종업원 사건을 다루는 제1원칙은 당사자들과 북한 가족의 안위다. 진상규명도, 후속처리도 그들의 인권과 배치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면담이든 조사든 비공개로 진행하고 그 결과 역시 최대한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접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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