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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서 척박한 삶 北노동자 3만명 이상…인권 실태는?

작성자
김장희
작성일
2017-04-01
조회수
1129
<연합뉴스 2017년 4월 1일>

단체 생활하며 감시·통제…거액 상납금 못내면 강제 귀국
공사 현장에서 생활하기도…작업장 사고·강도 피해 속출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북한 당국에 의해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인권 사각지대에서 척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집단생활을 하며 북한 당국의 감시 아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과도한 상납금 부담에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아 이들이 결국 손에 쥐는 돈이 많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근로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조사 결과는 와세다대 지역·지역간연구기구와 한국통일연구원, 리츠메이칸대학국제지역연구소,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가 1일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대 오쿠마타워에서 개최한 '러시아 극동지역 북한파견노동자에 관한 워크숍'에서 발표됐다.
이애리아 일본 와세다대 교수, 이창호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연해주·사할린 등 극동 러시아 현지에서 북한 출신 노동자의 노동·생활 환경과 인권 실태 등에 대해 조사했다.

현직 北군인 추정 노동자들 러시아 집단 거주지(도쿄=연합뉴스)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위치한 북한 노동자 집단 거주지. 이 곳에는 북한의 현직 군인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합숙하며 집체 노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애리아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북한 출신 노동자의 노동·생활 환경과 인권 실태 등에 대해 조사해 그 결과를 1일 일본 도쿄(東京)와세다대에서 열린 '러시아 극동지역 북한파견 노동자에 관한 워크숍'에서 발표했다.

◇ 러시아 북한노동자 3만명 이상…北 감시받고 생활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3만~3만5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설립한 회사에 소속돼 집체(집단) 노동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노동자들은 대외적으로는 외국인 회사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기관에 속해 있다. 예를 들어 사할린 내 칠보산이라는 회사는 대외건설지도국의 제1건설사업소에 해당한다. 젊은 현역 군인들로 집단을 꾸려 러시아에서 집체 노동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체 노동을 하는 경우 주로 교외의 아파트나 공장 건물에서 단체 생활을 하며 북한 당국이 보낸 보위부원, 당비서, 통역, 지도원들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외부인과의 접촉 상황, 스마트폰의 인터넷 접속 내용 등을 파악하기 위해 불시에 점검이 실시되기도 한다.
북한 당국은 이들이 러시아인이나 한국인 등 외부인과 접촉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소속 회사 본부에서 사상학습과 생활총화 교육 등으로 정신 무장을 시킨다.

◇ 거액 상납금에 허덕…상납금 못내면 강제 귀국

북한 건설근로자의 1년 수입은 많은 경우 수만달러(수천만원)에 이르기도 하지만 적게는 200달러(약 22만4천원)인 경우도 있다. 이들을 관리하는 북한건설회사 대표(현장소장 포함) 중에서는 노동자들로부터 받은 뇌물을 포함해 연간 5만~10만 달러(약 5천600만~1억1천200만원)을 버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입이 적은 편이다.
이는 임금 자체가 적은 탓도 있지만 적잖은 돈을 소속 회사에 '계획분'으로 상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분은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설립한 각 회사에 할당한 금액이다. 1인당 600~1천달러(약 67만2천~112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계획분이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2~3개월분 이상 상납을 못하면 강제 귀국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일을 못 할 때에도 강제 귀국을 당하지 않으려면 노동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러시아 등에서 일하는 것을 돈을 벌 기회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해외 파견을 위해서는 100~300달러(약 11만2천~33만6천원)의 뇌물이 필요할 정도다.
근로자들은 러시아 회사가 공사대금을 제때 못 주면서 임금을 못 받는 곤란도 허다하게 겪는다. 북한 노동자들이 현지 마피아에 의뢰해 체불임금의 50%를 받아낸 사례도 있다.

◇ 사할린에선 '청부' 노동자 확산…자본주의 방식 퍼져

사할린의 경우 집체 노동을 벗어나 개별적으로 집 수리 등 소규모 일감을 따내 돈을 버는 '청부'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한 만큼 수입을 올리는 자본주의 방식이 이들 삶에도 들어온 셈이다.
청부 노동자 역시 계획분을 납입할 의무를 가진다. 계획분에 대한 압박 때문에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끝내려는 근면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청부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월급은 3천달러(약 336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이들의 수입 수준은 러시아 다른 지역의 보통 북한 노동자들보다 높은 편이다. 스마트폰이나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담긴 동영상 CD를 은밀히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사할린 지역은 상대적으로 청부 노동이 많고 생활에서 통제를 덜 받는 장점이 있어 북한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최근 들어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
이창호 한양대 교수는 "잇따른 탈북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 당국이 10년 이상 파견된 노동자들을 순차적으로 귀국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열악한 환경 北 노동자…"선발부터 노동현장까지 모두 인권침해"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는 기숙사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공사 현장에서 숙식하며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건강 상태가 좋을 리 없는 상황이다.
작업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현금을 노리는 강도들에게 피해를 입는 것도 흔하다.
이애리아 교수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 대해 "선발에서부터 노동 현장까지 모든 것이 인권 침해"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보다 어떤 방법으로 이들의 인권을 회복시켜줘야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예준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은 과도한 작업량을 소화하면서 최대 근로시간, 휴식권 등에서 현지 노동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사이에서는 북한 내부에서와 같은 상호 감시체제가 작동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힘들게 일하지만 임금의 상당부분은 충성자금, 계획분 등으로 공제돼 개별 노동자가 받는 금액은 소액에 불과하다"며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