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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권

국가 배급에 대한 대안 모색
중앙배급체계가 붕괴되자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대책을 찾아야 했다. 국가 시책이 아닌 비공식적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장마당(시장)’은 “농민 시장”에서 출발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자기 집 주변의 밭에서 가꾼 농산물을 팔았다. 협동농장 역시 생산한 쌀의 일부를 비축해서 다음 철 농사에 필요한 농업 장비를 구하는데 사용하려고 하였다. 국가가 농업 장비를 농가에 대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초보단계의 ‘장마당’ 경제는 법규와 관계 없이 발생한 것으로, 초기에는 불법적인 시장, 혹은 암시장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이 되자 장마당은 북한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2008년이 되자 북한 가구 수입의 78%가 비공식적 경제활동에서 발생하였다.

위원회가 수집한 증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비디오, 담배, 기타 물품들을 팔아서 식량을 살 뿐 아니라 중앙배급체계를 통해서는 충족되지 않는 것들을 샀다고 했다.
  • 한 증언자는 1990년대 식량 배급이 반으로 감소했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가족은 중국에서 장사를 해서 부족분을 충당하였다고 했다.
  • 또 한 증언자 역시 1990년대부터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그 결과 식량 밀수 및 쌀 암시장이 등장하였다. 식량이 귀해지기 전에는 제대로 된 시장이 없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식량 배급도 완전히 중단되어 식량을 구할 장소는 시장밖에 없었다.
  • 당시 14세였던 또 한 증언자는 암시장에서 비디오를 팔면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종종 체포되었다고 한다.
  • 다른 증언자는 1995년까지는 식량 상황이 좋았다고 했다. 1996년이 되자 그의 가족은 집안의 물건을 내다 팔기 시작하였다. 물건을 모두 팔아버린 후 그는 시장에서 담배와 채소를 팔기도 하였다.
  • 다른 증언자는 1990년대에 “달리기 경제”가 생겨났다고 증언한다. “달리기”란 작은 도시에서 구한 물건을 시골로 가져가 판매함으로써 그 차익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사람들은 주로 라진·선봉(라선경제특구)에서 오는 물건들을 팔았는데 대부분 중국산이었다.
  • 두 아이를 둔 한 아버지는 식량 배급이 네 식구가 먹기에 충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와 아내는 자녀들과 먹고 살기 위해 불법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내는 농사를 지어 콩으로 몰래 두부를 만들어 팔고 술도 팔았다고 한다.
시장의 발달은 북한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장은 중앙배급체계의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일부에게는 예컨대 거래를 함으로써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시장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거주지, 직업, 부정부패 행위, (공직에 있으면서 비공식적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중국, 일본, 한국 등에 있는 친척으로부터 송금을 받는 등으로) 외환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가 포함된다. 일부 관료들은 시장으로부터 식량을 전용해서 이윤을 얻거나 시장 활동과 관련된 뇌물을 받음으로써 이득을 취하였다. 기존의 소외 집단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더욱 취약해졌다. 

시장은 계속적으로 식량에 대한 물리적 및 재정적 접근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재원이 없거나 거래를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시장으로의 접근이 사실상 차단되었다.
  • 평안남도 남포에서 온 한 증언자에 따르면, 시장에서 쌀 가격이 1kg 당 500~600원으로 거래되었는데 이는 본인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 또 다른 증언자는 2010년에서 2011년 사이에 식량이 전혀 배급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북한을 떠나올 시점에서 인구의 40%는 식량을 구입할 능력이 없었다고 추정한다. 증언자는 “돈 없는 사람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 북한에 지하 언론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Asia Press에서 임진강 지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시마루 지로씨는 현재 시장에서 쌀 가격이 1kg 당 5,000원 정도라고말한다. 이시마루씨는 북한 공무원의 평균 월급이 2,000~3,000원이라고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문제는 식량에 대한 접근성이다. 시장에서는 많은 식량이 거래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구입할 능력이 없다.
  • 비공개 면접에 응한 한 여성은 2012년에 쌀 가격이 급등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쌀을 구입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굶어 죽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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