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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표현·종교의 자유 제한

관찰 및 감시 체계
북한은 반국가적이거나 반혁명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의 표현을 감지하기 위해 거대한 감시 조직을 구축하였다. 여기에는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활동하는 비밀 정보원들의 거대한 조직망을 조직하는 것도 포함한다. 대중조직의 간부들이 시행하는 감시에 더하여 모든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회원이 되는 이웃감시제도(‘인민반’)도 활동 중이다.

이웃감시제도(‘인민반’)는 등록이 되지 않은 방문객을 포함한 지역 내의 이례적인 활동에 대해 인민보안부나 국가안전보위부에 보고하고 반국가적 활동과 반대 의사 표명에 대해 감시하도록 임명된 대표가 관장하는 약 20~40가구 단위로 이루어진다. 간혹 마을 사람들은 보안 요원으로부터 그들의 이웃을 염탐하도록 지시받기도 하였다. 인민반은 주민들을 등록하고, 그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사상교육을 실시하며, 지역 당위원회가 임명한 대표들과 함께 여러 활동에 사람들을 동원시킬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인민반은 가정 생활의 사적인 부분도 면밀히 조사한다. 또한 등록되지 않은 손님이나 불순한 활동들이 있었는지 밝히기 위해 가정집을 아무때나, 심지어 밤에도 방문할 수 있고, 보안 기관에 조치를 취하도록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사위원회는 작은 집단에서 무심코 한 말이라 해도 결국 정보원이 보고하여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1996년 1월, 손정훈 씨는 작은 신년 모임을 위해 그의 상관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중앙위원회 산하 무역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비디오 테이프 녹화물에서 전투기를 포함한 서양의 군사 무기류들을 보았다. 그는 기술이 꽤 발달하였다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실수를 하였다. 이 언급을 한 그의 행위가 보고되었고 그는 불려가 심문받았다. 자본주의 국가를 찬양하였다는 혐의를 받았고, (그의 좋은 ‘성분’과 전반적으로 좋은 행실 때문에)기소되거나 체포되지는 않았지만 직위를 박탈당하였다.
개인의 충성심을 평가하고 알아내기 위해 행동을 감시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여러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 예를 들어, 김주일 씨는 런던 공청회에서 조선인민군에는 부대의 부대장과 부 행정관이 군인들의 정치적 충성심을 감시하고 조선노동당 직할의 조선인민군 정치부에 보고하는 공식적인 정치적 감시를 위한 병행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비무장 지대 가까이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소대에도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 (군대 자체 비밀 경찰)에서 파견한 장교가 있었다. 매일 아침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그들은 총화 시간에 참석하곤 하였다.
증언자들은 또한 그들의 이동이나 가족 구성원들의 이동이 출신 성분 때문에 더 엄밀한 감시를 받았다고 말하였다.

서울의 조사위원회에 정보를 제공한 이재근 씨는 자신이 남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엄밀한 감시하에 있다고 느꼈다. 그는 그를 관찰하는 일곱 단계의 감시 체계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입 밖으로 내는 모든 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보위부에 보고되었다.
  • 부모님이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으로 “귀국한” 한 증언자는 그들이 귀국자들이었기 때문에 가족이 철저히 감시당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전 일본에서의 삶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에게도 학교에서 일본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당 간부들은 특히 그들이 일본에서 우편을 받았을 때 집에 와서 가족들을 조사하곤 하였다.
  • 양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이주하여 귀국자와 결혼한 한 일본인 여성은 모든 편지에 김일성 덕택에 잘 살고 있다고 써야 했던 것과 그들이 받은 모든 편지들은 전달받기 전에 이미 개봉된 상태였던 것을 회상하였다.
  • 한 증언자는 10호실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는 김씨 가문의 친인척들과 교류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산하 조직지도부 관할 아래에 있다. 김씨 가문과의 모든 교류는 10호실에 보고해야 했다. 복도에서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의 둘째 아들 옆을 지나고 그가 알아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고가 필요한 접촉이었다. 증언자는 이와 관련, 전해진 바에 따라 해외 파견 기간 동안 김일성의 가까운 인척을 위해 심부름을 해주던 한 간부가 10호실의 감찰 보고에 따라 어떻게 경고를 받고 북한으로 귀국조치 되었는지도 들려 주었다.
앞서 언급한 DVD와 같은 해외 물품에 대한 단속 외에도, 마약 남용과 같이 반사회주의적이라고 간주되는 활동과 노숙자와 부랑자들을 관리하는 활동을 포함하여 특정 범죄와 범법 행위를 표적으로 삼는 검열을 정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중앙검열 조직도 있다. 보다 하위 단계에서는 일단의 주민들이 도덕성 위반이라고 규정된 활동에 대한 단속을 위해 동원된다. 단속 대상은 여성들이 바지를 입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한 금지와 같이 이따금씩 공표되는 방침에 대한 위반이다. 2009년 평양의 공원에서 있었던 도박에 대한 단속 결과로 붙잡힌 사람들이 일반 감옥(‘교화소’)로 보내지거나 그들의 가족이 평양에서 추방되었다.

공개적인 정치적 비판같은 보기 드문 경우는 큰 사건으로 간주되어 강력하게 처벌된다.
  • 조사위원회는 2001년 6월 남포시에서 김정일 타도를 촉구하는 수십 개의 대자보를 붙인 한 젊은 노동자를 목격한 증언자로부터 정보를 제공 받았다. 이것은 커다란 정치적 사건으로 간주되었고 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가 합동 기동대를 구성하였다. 보고를 들은 김정일은 피의자들을 추적하고 강력하게 탄압하라고 확실하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5개월 동안 보안 기관들은 10세 이상의 모든 주민들로부터 필체 견본을 받아갔다. 그 남자는 정보원이었던 한 친구에게 그의 행동에 대해 누설하였다가 붙잡혔다. 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도 공모자로 연루시키지 않았고 수사관들은 그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에서 보안 기관들은 그 남자가 해외 영화와 음란물을 시청하여 타락했고 결국 미국의 첩자 노릇을 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로 하였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군 최고재판소의 유죄 판결에 근거하여 그 남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직계 가족과 도시 주민 전체가 그것을 지켜보도록 강요되었다. 희생자의 아내는 그가 체포되었을 때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그와 즉시 이혼하도록 강요 받았다. 그의 어머니와 두 여동생은 15호 ‘관리소’로 보내졌다.
북한 주민들이 점차 경제 여건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것에 관한 최근 흔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 초 함경북도에서 50세 이하의 여성이 장마당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때 여성 집단이 벌인 시위가 그 금지법을 완화시켰다. 2009년 말엽 북한의 실패한 화폐 개혁 기간에도 시위의 물결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항의의 표시로 사람들이 옛날 지폐를 불태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서 정책 개혁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간부들을 포함하는 약 50건의 처형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2011년 초, 김정일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평양을 밝히고자 평안북도에서 전기를 우회시켰던 때 그곳 사람들은 음식과 전기를 요구하며 간헐적으로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조사위원회는 이러한 무작위적인 시위들이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대부분 경제 여건에 대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중국을 통해 북한 접경 지역으로 들어오고 내부로 확산되면서 점점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전혀 다른 실상에 대해 알아 가고 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다음 두 번째로 권력이 있다던 인물의 최근 처형과 그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숙청으로 주민들은 삶과 죽음에 있어서 다시 한번 국가가 가지고 있는 명백히 자의적인 권력과 반국가적이거나 반혁명적인 활동들을 저지하려는 국가의 결의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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