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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납치·유괴

[시기 및 유형] 1990년대부터 현재: 중국에서의 납치
1990년대에 시작된 주민들의 중국으로의 대거 이주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은 중국 내에서 조직적 납치를 자행하였다. 피해자들은 북한 내 강제실종의 대상이 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운 중국과 한국 사람들과 함께, 전직 북한관료 및 외부세계와 한국에 민감한 정보를 제공할 만한 사람들은 주요 피해자들 중 일부였다:
  • 국경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던 한국의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는 지난 15년 간 적어도 여섯 명의 한국인과, 주로 한국계 중국인들이 납치되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씨는 또한 납치가 특정 북한 주민들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언급하였다.
“적어도 지난 15년간 상당 수의 납치와 테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납치 조직을 구축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 이들은 납치를 위해 사람들을 파견하였고 [중국의 주요 도시로] 납치범들은 선양 등의 먼 도시까지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이 아니라,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나 경찰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 인물들을 납치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중요 보직을 맡았던 북한이탈주민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목표물로 삼은 사람이 중요 위치에 있던 사람이 아닐지라도, 중국에서 반정부 활동에 가담한 사실이 발각되면, 납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중국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를 위하여 중국에서 납치를 자행한 첩보원들에 유죄판결을 내린 한국과 중국 두 법원의 판결을 각각 입수할 수 있었다. 조직적인 납치와 그 방법에 대한 판결의 자세한 조사결과는 상호보완적이며, 또한 독립적으로 실시한 공청회, 기밀 인터뷰와 진술을 통하여 얻은 정보로도 입증된다. 

첫 번째는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의 2005년 판결이다. 제시된 결과는 한·중 국가안전보위부 첩보원인 한 피고의 증언, 그리고 직접적으로 납치에 가담하였던 전 북한 요원 한 명의 증언에 기초한다. 이는 한국의 김동식 목사의 납치, 과거 일본국적을 가졌던 량추옥 씨와 그 가족, 그리고 북한 주민에 대한 기타 12건의 납치 등 북한이 납치에 대해 세세히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피고는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는 중국 지린성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 중급인민법원의 2006년 판결이다. 6건의 납치와 1건의 불법 구금을 이유로 두 명의 북한 사람과 네 명의 중국인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다. 판결은 그들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관료의 지시를 받아 납치를 수행했음을 발견하였다. 판결에서 피해자로 언급된 이들은 과거 일본인이었던 량초옥 씨와 한국의 김동식 목사였다. 국가안전보위부 정보원들 중 북한 사람 두 명은 각각 3년 7개월과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중국인들은 6개월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 내용과 위원회에서 전해들은 추가적인 목격자 증언 및 또다른 입수된 정보들에 의하면, 북한의 입장을 반영하여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 및 중국인들의 팀 전체가 치밀하게 조직된 납치를 상당수 수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 근거지를 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에 의해 유지되었고 밀착된 작전 지침과 지시하에서 행동하였다. 회령에 ‘곡산’공장으로 일컬어지는 국가안전보위부 “안전가옥”은 작전을 위한 기지로 사용되었다. 함경북도에 주둔하며 작전을 지시한 국가안전보위부 부대 지휘관들이 중국과 한국의 판결 내용에 언급되었다. 독립적으로, 조사위원회는 중국에 주둔하던 한 전 국가안전보위부 요원과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는 작전을 수행한 또다른 목격자에게서 동일한 인물들이 연루되었음을 시사하는 정보를 받았다.
  • 2000년 1월, 국가안전보위부 작전팀은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김동식 목사를 납치하였다. 김 목사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북한 주민들이 도망가는 것을 도왔기에 북한의 표적이 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 작전요원들은 그를 함정으로 유인한 뒤, 북한으로 강제이송하여 국가안전보위부 작전요원들에게 넘겼다. 북한에서 김동식 씨는 함경북도 회령의 한 국가안전보위부 지하 심문 감방에 감금되었다. 김동식 씨와 같은 시기 함께 국가안전보위부 지하 감방에 구류되어 있던 정광일 씨는 그가 그곳에서 김동식 씨를 보았고 함께 대화도 나누었다고 조사위원회에 증언하였다. 김동식 씨는 목발을 짚고 있었으며, 고문으로 인한 부상이 있어 보였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김동식 씨는 고문중 지속된 부상으로 인해 2001년 2월 구금 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 1999년 2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이 량초옥 씨와 그 가족 3명을 납치하였다. 주요 피해자는 61세 일본 여성으로서, 그녀는 19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되었고, 이후 북한 주민이 되었다. 지상 작전요원들에게 전달된 지시에 따르면, 회령에 있는 국가안전보위부는 수단을 가지리 않고 피해자와 그녀의 가족을 납치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으며, 이는 “량초옥 씨와 그 가족이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한다면 북한에 불명예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래는 이외에도 1998년부터 2000년의 기간 동안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에 따라 중국에서 납치된 사람들이다: 
  • 1998년 3월, 북한 주민이었던 천성(중국어: Qian Cheng) 씨는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1998년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는 한국의 정보기관과 협조했다는 혐의로 국가안전보위부의 표적이었다.
  • 1998년 8월, 전직 북한 기자였던 최천석(중국어: Zhu Yuan) 씨는 탈북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납치되었다.
  • 류영범 씨는 1999년 1월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북한에 납치되었다. 그와 함께 일하던 박범옥 씨는 중국 지린성 안투현에서 한 달 뒤 납치되었다.
  • 1999년 2월, 석두옥 씨는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
  • 1999년 2월, 박성국 씨는 한국의 정보부를 위해 일한다는 북한의 혐의를 받고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납치되었다.
  • 1999년 2월, 국가안전보위부원들은 중국 지린성 룽징시 싼허마을로 도망친 조선인민군 군인 한 명을 납치하였다.
  • 1999년 2월, 국가안전보위부원들은 두 명의 조선인민군 군정보사령관과 결탁하여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두 명의 군인을 납치하려는 시도에 실패하였다. 그들은 탈북하는 이들을 돕고 있었다.
  • 1999년 3월, 국가안전보위부원들은 지린성 룽징시에서 황영찬 씨를 납치하였다. 그는 중국으로 탈북하기 이전에 평양의 고위관료였다.
  • 1999년 3월, 임인숙 씨와 그녀의 남편 한인찬씨, 그리고 두 딸, 아들, 그리고 8살 손자는 중국 지린성 안투현에서 북한에 납치되었다.
  • 1999년 6월, 국가안전보위부의 곡식 절도 혐의를 받던 김창록 씨는 지린성 룽징시 싼허진에서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 2000년 10월, 북한 요원들은 지린성 옌지에서 중국 국적의 진쩡루(Jin Zhonglu) 씨를 납치하였다. 피해자는 과거에 첩보를 가지고 탈북해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 2001년 4월, 북한 요원들은 진후제(Jin Huzhe) 씨를 중국 지린성에서 납치하였다. 그들은 실제 표적이었던 다른 북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두만강에서 익사시킬 것이라며 협박하였다. 요원들이 그들의 실제 표적이 이미 중국에서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진후제 씨는 풀려났다.
조사위원회는 중국에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북한의 행동이 비단 1998년에서 2001년 사이에 일어난 납치에 국한되지 않고, 오랜 기간동안 실시되어왔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 
  • 최고지도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은 전직 북한 호위사령부원은 1989년 중국으로 탈북했다고 증언하였다. 그가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 한국의 외교관을 가장한 북한 요원들은 그를 북한 대사관으로 유인하였고, 그곳에서 평양으로 다시 강제 이송되었다. 증언자는 이후 완전히 풀려나기 전까지 요덕 15호 정치범수용소에 수년 간 수감되었다.
  • 1995년 7월, 안성운 목사가 납치되었다. 그는 이후 북한 텔레비전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이후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 세계기독인연대(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가 조사위원회 측에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 주민인 길지만, 김철훈, 김철수 그리고 심성신 씨는 2003년 4월 모두 중국에서 납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에 한국으로 탈북한 진경숙 씨는 2004년 8월 중국으로 방문하던 중 납치되었다. 전 북한 군관리였던 강정 씨와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는 것에 가담하고 있던 임영학 씨는 2005년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납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 70개의 NGO를 아우르는 북한자유연합은 73세 여성인 이주임 씨가 중국의 한 병원에서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요원들은 북한이 6·25전쟁 도중 젊은 여성이었던 이씨를 납치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2008년 4월, 42세 조선족 이기천 씨는 두만강 인근에서 북한 요원들에게 붙잡혔다. 이씨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돕는 데에 연관되어 있었고, 새로 도착한 북한 주민들을 국경에서 중국 옌지로 안내하고 있었기에 납치되었다.
  • 한 증언자는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추씨(전체 성명 공개하지 않음)의 2010년 납치 사실에 대해 조사위원회에 증언하였다. 조선족 남성이었던 추씨 또한 탈북하는 이들을 돕는데에 가담하였다. 조사위원회에 제출된 또다른 기밀보고에 의하면 조선족 약 200명 가량이 납치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 국경지역의 중국쪽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고 인근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몇몇 다른 목격자들은 국가안전보위부의 꾸준한 주둔과 납치위협이 있음을 증언하였다. 한 증언자는 국가안전보위부 정보원으로 밝힌 사람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물리적인 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 차례 모두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다른 증언자들은 중국 보안 기관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특정 경고를 받아 어떻게 계획된 납치에서 탈출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최근 탈북한 한 전직 북한 관리는 국경 지역의 여러 교회에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교회 지도자들이 증언자를 도울 경우 납치피해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외면당하였다고 보고하였다.
  • 한 전직 관리는, 태국에 주재하는 북한 관리들이 태국으로의 탈북을 성공한 고위급 북한이탈주민들을 찾아내어 납치할 것을 지시받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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