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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구금·고문·처형

정치범수용소
중대한 정치적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즉결처형되지 않는 경우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정치범수용소로 강제실종된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가능성이 없는 채로 종신수용된다. 수감자들은 외부 세계와의 모든 접촉이 금지되며,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수감자들의 생사가 전해지지 않는다.

수용소는 현존하는 정치체제와 북한의 지도부에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으로 도전하는 단체, 가족 및 개인을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비밀 수용소에서 새어나오는 한정적인 정보로 인해 야기되는 공포로 인해 정치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도전을 강력하게 억지하게 된다. 수용소는 대부분 외딴 산지에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산으로 보내졌다”는 완곡한 표현은 북한에서 국가가 개입한 강제실종과 동의어가 되었다. 몇몇 증언자들은 북한 주민들이 수용소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공포감이 크다고 전하였다.
  • 정진화 씨는 수용소의 존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알려져 있으며 공포의 대상이라고 전하였다:
“모든 북한 주민들은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단 수감되면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잔인한 곳이며, 경찰에게 때때로 구타당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안에서의 취급이 얼마나 가혹할 것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 김혁 씨도 또한,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수감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들은 일단 수용되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정치범수용소]로 들어가는 정당한 절차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하룻밤에 한 가족이 사라질 수도 있고, 그 경우 그 가족이 [수용소에] 보내졌다는 암시를 받습니다.”

당국자들은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국제인권단체들이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보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적 기밀로 여겨지고 있다. 당국자들은 정치범수용소가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데 지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용소는 군사시설이나 농사시설로 위장되어 있으며, 보안절차를 통과한 선별된 관료들만이 해당 시설을 방문하도록 허용된다. 인권단체에게 수용소가 있는 지역을 방문하도록 허용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 기밀내부용어로, 수용소는 은유적으로 “관리소”로, 수감자들은 “이주민”이라고 불린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국가안전보위부의 담당국(제7국)은 “농사국”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수용소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엄격한 지침의 적용을 받는다는 기밀 증언이 있었다.

경비병, 석방된 수용자, 수용소 인근의 동네는 수용소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면 심각한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협박을 받는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수용소 관리들은 무력분쟁이나 혁명이 있을 경우 수용소의 존재에 대한 일차적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든 수용자들을 살해하도록 하는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명령은 최초에는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내려졌으며 추후에 김정일에 의해 재승인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안명철 씨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수용소의 존재에 대한 “모든 증거를 없애기 위해” 경비병이 모든 수감자들을 의무적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증언하였다. 조사위원회와 비공개 면접한 다른 수용소의 전직 경비병들과 관료들 역시 이 명령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안씨와 다른 증언자들은 또한 명령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 있으며 단기간에 다수의 수감자들을 살해하기 위한 훈련도 행해졌다고 설명하였다.
  • 김은철 씨는 북한을 탈출한 이후 정치범수용소 15호에서 보낸 3년의 수감생활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하였다. 당국자들은 연좌제를 동원해 그의 형제를 처형하는 것으로 보복하였다. 이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그의 여자형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치범수용소 체제의 존재를 감추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원회는 1950년대 후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광범위한 정치범수용소 시스템이 운용되고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조사위원회는 정치범수용소를 개인적으로 경험했거나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을 면접했으며, 이중에는 전 수감자 및 경비병들도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공청회에서 증언을 하였다.

더불어 조사위원회는 수용소에 대한 위성사진과 전문위성사진 분석가들의 분석결과를 확보했으며, 이는 관련 시설을 식별할 수 있는 전직 경비병 및 수감자들의 증언에 의해 내용이 보충되었다. 조사위원회는 이와 같은 사진들을 통해 수용소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대규모 구금시설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수용소의 건물 발전 상황에 대한 선명한 사진을 제공하였고, 전 수감자와 경비병들로부터 전달받은 직접적인 설명을 확증해 주었다. 조사위원회의 공청회 중 몇몇 전 수감자 및 경비병들은 위성사진에서 수용소 위치를 확인하고 설명하며, 강제노동, 고문, 처형 및 기타 관련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특정 시설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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