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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구금·고문·처형

정치범수용소의 위치 및 규모
현재 북한에는 네 개의 대규모 정치범수용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내부 용어로 수용소를 구분하기 위해 번호가 매겨져 있다.
  • 14호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의 개천시 옆 산지에 150㎢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960년대 이후 등장했으며 1980년대 초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수감자는 종신수용되며, 조사위원회에 공개적으로 증언한 신동혁씨만이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수감자로 알려져 있다. 위성사진에 보이는 바에 따르면, 수용소는 그가 탈출한 2005년 이후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 15호 정치범수용소는 370㎢의 규모로 평안남도 요덕군의 여러 계곡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모든 정치범수용소가 석방 가능성 없이 종신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5호 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 및 혁명화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점에서 다른 수용소와 다르다. 완전통제구역의 수감자들은 사상적으로 교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며 종신수용된다. 혁명화구역의 수감자들은 경미한 죄로 인해 수감되었으며, 출신성분이 아주 좋은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수용소 당국자들에게 성실히 노동하고 일일 교화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일부의 경우 뇌물을 공여함으로써 사상적으로 교화된 것을 증명할 경우, 몇 년의 수감 후 석방될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 16호 정치범수용소는 함경북도 명간의 험악한 지형에 560㎢의 규모로 분포한다. 이는 평계리 핵 실험장과도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직접증언에 따르면 이수용소는 보다 작은 규모로 조성되었던 1970년대 이후 존재해 왔다. 수감자들은 수용소의 북서와 남동 지역의 두 개의 거주지역에서 수용된다.
  • 25호 정치범수용소로도 불리는 구금시설은 함경북도 청진시 근방에 위치해 있다. 14, 15, 16호 수용소는 각각 수만의 수감자를 수용하나, 25호 수용소의 수감자 수는 수천 명 규모이다. 또한 이 수용소는 주요 구역이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어 중범죄 감옥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수용소와 다르다. 이 곳의 수감자는 정치적 이유로 재판 없이 종신수용되기 때문에 25호 수용소는 정치범수용소로 취급된다. 최근에 25호 수용소가 확대되어 현재는 2006년의 거의 두 배 규모인 980㎡를 차지한다.
14호, 15호, 16호 수용소는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한다. 25호 수용소도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사위원회는 수감자가 알려진 정치범수용소와 비슷한 상태에서 구금되어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밀 교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외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증언자들이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정치적 이유로 재판 없이 관료나 일반 병사를 수용하는 소규모의 특별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 전직 조선인민군 장교인 김주일 씨는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1996년 자신이 속한 대대를 방문했을 때를 묘사하였다. 김정일이 군인들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아채자, 그는 즉시 대대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재판없이 군 교화소로 보냈다. 김주일 씨는 이러한 교화소들은 조선인민군 시설에 위치하며 조선인민군이 관리하는 구금시설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곳에서 종신형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군사감옥에서 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정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
과거에는 다른 정치범수용소가 추가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12개 이상의 정치범수용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현재의 체계가 정착되었다. 일부 수용소가 폐쇄되었고, 남아있는 수용자들은 확대된 다른 수용소로 이감되었다. 
  • 국가안전보위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1960년대 이후 2012년 중반에 폐쇄할 때까지 22호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였다. 당국자들은 수용소의 위치가 중국 국경과 가까워 탈출 가능성이 높고, 수용소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수용소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또는 2010년에 폐쇄절차가 진행되기 이전, 22호 수용소는 3만 명에서 5만 명의 수감자를 수용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조사위원회는 행방이 묘연한 많은 수의 수감자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증언자들은 22호 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한 엇갈린 추측을 제시한다. 일부는 22호 수용자들이 14, 15, 16호 수용소에 분산되었다는 의견을 표명한다. 다른 사람들은 22호 수감자를 모두 수용했다면 증축이 불가피했을 다른 수용소들의 위성사진에서 그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들은 2009년과 2010년에 22호 수용소의 식량공급이 전용되어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의혹을 제시한다.
  •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하는 11호 정치범수용소는 함경북도 관모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당초에는 중요한 수감자와 그 가족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사용되었다. 이 수용소는 1980년대 말 김일성의 별장이 주변지역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수감자들은 16호 및 22호 수용소에 분산되었다.
  • (역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관리하는)12호 및 13호 정치범수용소는 함경북도의 온성군에 자리하고 있었다.1080 수감자는 지주 가족, 경쟁 사회주의 분파의 지지자 및 친일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수용소는 1990년대 초반에 폐쇄되었으며, 남아있는 수감자들은 22호 수용소로 이감된 것이 확인되었다.
  • 1960년대 초반 이후 평양 인근의 성호에 26호 수용소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였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전직 정치범 수감자가 그 존재를 공개하고,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이를 광범위하게 보도한 이후 폐쇄되었다.
2006년까지 인민보안부과 그 전신인 사회안전성 또한 국가안전보위부 및 조선노동당의 감독을 받으며 정치범수용소를 관리하였다. 인민보안부 수용소는 현재 수용소와 같은 특징(결혼금지 등)을 공유하지 않으나, 이러한 수용소들은 수용자들이 강제실종을 겪었으며, 재판 없이 수감되어 굶주림 및 강제노동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14호 수용소 부근인 대동강 남쪽 둑의 평안남도 북창군에 위치한 18호 정치범수용소는 1990년대 후반에 5만 명을 수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8호 정치범수용소는 적어도 일부의 수감자들이 정치적으로 교화될 경우 조기 출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15호 정치범수용소의 혁명화구역과 비슷하다. 18호 정치범수용소는 2006년 평안남도 북창의 시설이 폐쇄되기 전까지 점차 규모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18호 정치범수용소가 있던 자리에는 단기 노동구금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18호 정치범수용소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석방된 것으로 보이나, 많은 수의 수감자들은 갈 곳이 없어서 수용소 내에서 계속 살면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18호 수용소의 매우 일부 수용자들은 석방되지 못한 것이 분명하며, 그들은 14호 수용소와 인접한 처마봉(평안남도 개천시) 부근의 새 정치범수용소로 이감되었다.
  • 17호 정치범수용소는 함경남도 덕성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인민보안부의 전신인 사회안전성에 의해 관리되었다.1085 이 수용소는 1980년대 중반에 1차 폐쇄되었다. 몇몇 증언자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에 18호 정치범수용소가 ‘심화조’ 사건과 관련하여 새로운 수감자들이 대량 수용되는 것을 처리하지 못해 일시 재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 사회안전성은 함경남도 탄천에서 19호 수용소를 운영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수용소는 1990년 부근에 폐쇄되었으며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석방되었다. 역시 사회안전성이 운영한 함경남도 덕성군의 23호 수용소는 1987년 일반 감옥으로 변경되었다.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수용소의 종합적인 수용인원에 대한 믿을만한 추정치를 제공하는 것은 극도로 힘들다. 한국 국가정보원에서 1982년에 제공한 추정치에서는 수감자 수를 10만 5천명으로 추정한다. NGO가 위성사진,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수용소에 있었던 경비병 및 수감자의 증언 등을 참조해 최근에 제시한 수감자 추정치는 15만~20만 명이다.

조사위원회에게 정보를 제시한 증언자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이 최근 몇 년간 감소하였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통일연구원은 현재 정치범수용소에 8만~12만 명이 구금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이 수치는 최신 위성사진 분석 및 1차 증언을 바탕으로 추정된 것이며, 18호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석방 및 22호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생사불명을 반영한 것이다. 유사하게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수용소 인원을 8만~13만 명으로 보는 것을 정확한 추정치로 제시하였다. 이는 2011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제시한 22호 수용소 폐쇄와 22호 수용소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소 13만 500명이라고 제시한 추정치에 부합한다.

수감자 수의 급격한 감소는 18호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대부분의 수감자가 석방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수감기간 중 극단적으로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수감자들이 아이를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즉 추가적인 석방이 없는 한, 수용소 인구의 감소는 새롭게 수감되는 인원의 숫자가 굶주림, 방치, 고된 강제노동, 질병, 처형 등으로 죽어가는 수감자들의 높은 사망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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